<스크랩> 그녀를 죽인 것은 남편일까, 권태일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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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우울증을 앓고 있던 주부가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가 뉴스에 등장한다. 그들 중 대다수는 특별한 생활고나 문제가 있었던 주부들이 아닌, 남편이 있고, 아이가 있는 평범한 주부들이다. 그런 그녀들이 죽음을 택하는 것을 단지 '우울증'이라는 병증 때문이라고 단정을 지을 수 있을까?

양귀자의 소설 '모순'에서는 평생을 지지리 고생하며 살아온 엄마 대신, 완벽한 남편과 부유한 가정생활, 완벽하게 자라준 자식을 가진 이모가 자살을 한다는 설정이 나온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녀가 왜 죽음을 선택해야 했는지 여러모로 생각을 해보게 되었는데, 어렴풋이 알것도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인물 중에 전혜린이라는 수필가가 있다. 시대를 앞서나간 똑똑한 여성이었고, 남편과 아이도 있었던 그녀는 젊은 나이에 자살을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행복했을 그녀가 남긴 삶의 기록들을 보면, 그녀는 끊임없이 권태를 두려워 했고, 그것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는 걸 알 수가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감정을 추스리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혹자에겐 너무 평범하고 지루하게마저 느껴졌을지도 모르는 매우 잔잔해보이는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 그 영화를 보면서 권태에 잠식당해 있었던 내 자신을 발견했기에 기분이 가라앉을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안정을 원하면서도 변화를 꿈꾼다. 그 꿈꾸는 변화의 폭이 어느 정도일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꿈꾸던 변화를 이루어내는 사람은 그 중의 극소수이다. 그래서 그들은 특별하다. 가까운 친구가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전 가족을 데리고 세계일주를 한다고 하면? 주위 사람들은 그들을 미친놈 취급을 하거나, 혹은 부러워한다. 철없다고 걱정을 할지도 모르겠다. 어디 잘되나 보자며 비딱한 시선으로 바라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는 사회가 정해놓은 정상인의 범주에서 벗어난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 여기서 부터 스포일러 꽤 있습니다. 참고하시길..

서로 사랑하는 부부와 아이 둘, 겉보기에는 매우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윌러 부부. 그들도 다른 이들처럼 권태로운 일상을 살아간다. 남편도 자신의 권태로움을 절감하며 기껏 추구하는 변화가 바람을 피는 것 정도이다. 꿈을 잃은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 역시도 갑갑함을 느끼기는 마찬가지. 그래서 그들은 모든 것을 접고 파리로 떠나기로 한다. 변화를 꿈꾸는 동안의 그들이 어찌나 행복해 보이던지... 

그러던 꿈을 접은 것은 결국 남편이다. 더 많은 월급과 더 높은 자리, 성공할 수 있는 승진의 기회 앞에 꿈꾸던 변화에 대한 열망은 사그라든다. 그걸 바라보는 아내 역시 삶의 의지를 상실한다.

그러면 과연 그들이 파리로 떠났다면, 행복해졌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동경의 대상인 '파리'가 상징하는 '변화'는 계속 되는 것이 아니다. 잠시 변화가 있을 뿐, 또 다시 일상은 반복되었을 것이고 역시나 그들은 안정된 삶을 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또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을까? 그렇게 해서 그들을 잠식하고 있는 권태로 부터 도망갈 수 있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일 그럴 수 있었다면 많은 예술가들이 극단적인 자살을 그 해답으로 내놓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다행히 많은 이들은 권태의 존재를 잊고 산다. 평생 의식하지 않고 살기도 하고, 이따금 떠오르지만 묻어두며 살기도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가끔 소심한 변화를 꾀한다. 사고를 치거나, 여행을 가거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직장을 옮기고, 새로운 애인을 만나기도 한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혹여 많은 시간, 오랫동안 그 권태에 대한 생각에 빠지게 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해지거나,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삶 자체가 지리멸렬해져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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